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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칼럼

어린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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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창의나라 작성일16-11-10 10:44 조회1,0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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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육을 받지 못하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의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 다른 동물들은 굶기지만 않으면 배워야 할 것을 스스로 배워 생명을 유지시켜 나간다. 그러나 인간은 말 한마디까지도 혼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야 비로소 습득하게 된다. 바로 이점이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무조건 어려운 지식이나 많은 사실들을 가르치고 외우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교육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서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밝혀진 이래 지금까지 어린이의 조기교육과 조기능력개발이 강조되고 있는데, 최근에 들어 이러한 조기교육의 의미가 지나치게 받아들여져 아직 발음도 충분하지 못한 영아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국민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유아에게 글자나 숫자를 가르치거나 심지어는 영어를 가르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요즘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속셈학원, 태권도학원을 다니거나, 혹은 수영이나 영어, 컴퓨터까지 배워야 하는 일과로 저녁 때까지 그야말로 놀틈이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냥 노는 것을 보면 괜히 불안한 생각이 드나 보다.    이처럼 우리는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 또는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무엇이든지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성급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진정으로 어린이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부모들의 기대감이나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잘못된 사회풍조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요즈음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가장 큰 관심은 진학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진학에는 대체로 시험성적이 결정적 구실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차 일류대학에 자녀를 진학시키거나 좋은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좀더 빨리 여러 가지 공부를 시켜서 남보다 앞서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과중한 심리적 스트레스나 실패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많은 탈락자들이 생기게 되는데, 우리의 사회적 여건은 고등학교나 대학진학에서 실패할 경우 또 다른 진로를 지혜롭게 찾아 나갈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강요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모들의 물질지향적, 출세주의적 사고방식과 사회적 현실에서는 교육이 자칫 경쟁에서 이기는 길만을 가르치는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이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과도한 특기교육이나 지식, 특히 시험에 필요한 지식의 주입에 치중하게 되고, 학급에서 또는 학년에서 몇 등이나 하는가가 학생을 둔 학부모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부정적인 풍토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길러지는 것은 인간의 내면적 동기보다 외적 동기 내지 사회적 보상체제가 우선되는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출세가 우선시되고 사회적 성공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는 개개인의 내면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과 개인적 소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또한 자신의 참된 모습과 진지한 인생관을 정립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며, 경쟁심만이 인간성을 압도하게 된다.  

   진정한 조기교육이란 무조건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게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른들은 흔히 “놀지만 말고 공부좀 해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어린이의 놀이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가치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 말이다. 어떤 어머니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공부는 언제 시작하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한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고, 장난감을 가지고 만들고 부수고 소리도 질러 보고, 친구들과 싸우고 다시 친해지면서 남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놀이 그 자체는 준비요 모방이고 꿈이다. 또한 어린이 생활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다. 어린이들이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놀이에서 사고력과 자아의식을 찾게 된다. 어린이들은 놀이가 생활의 전부이므로 그들에게 놀지 말라는 것은 숨쉬는 것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성장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부모들은 어린이에게서 금방 나타나는 특기교육이나 재능교육의 효과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자기 마음대로 잘 놀 수 있는 어린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잠깐 생각을 돌려서, 만약에 에디슨이 요즈음 우리 나라의 한 가정에 태어난다면 그는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그가 지금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받게 된다면 과연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단적으로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우리의 학교교육이 지식 위주의 교육이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돌릴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가정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에디슨의 과학정신은 결코 학교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길러진 것이다.  

   실제로 에디슨은 3개월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 국민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에디슨을 저능아로 단정하여 퇴교시켰다. 에디슨은 어머니에게서 3년을 배웠다. 에디슨이 집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는 영어, 산수, 사회, 자연과 같은 과목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부보다 훨씬 더 소중한 학습하는 정신과 탐구하는 자세를 배웠다. 에디슨은 뒷날 어머니에게서 공부를 배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님은 제게 배움을 사랑하는 마음과 배움이 소중하다는 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에게 지식 그 자체가 소중하기 전에 지식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기쁨을 준다는 소중한 진실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부모들도 더 이상 지능개발이니 재능교육이니 하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한발 더 빨리 입시지옥으로 몰아 세우지 말고, 아이들의 탐구심과 지적 호기심을 길러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국민학교 까지는 마음껏 놀도록 허용하는 혜안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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